“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명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삼하8:4)
다윗은 결국 통일 왕국의 왕이 되고, 그는 어디에 가서 싸우든지 이기게 됩니다.
그 승리한 기사의 한토막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기록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마병은 놀라운 기동력과 파괴력을 가진 전투력이었는데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말의 힘줄을 끊었습니다.
신명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시는 규례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마병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최소한의 마병만을 남긴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그냥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좋은 건,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부탁했던 분들에게 목사 안수를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나누고,
몇 명에게 책망 아닌 책망을 들었습니다.
주신 타이틀을 왜 가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저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임을 압니다.
하지만 나도 삶 속에서 말들의 힘줄을 끊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된 야곱과 식솔들은 자신들을 시기하는 라반의 낯을 피해 야반도주합니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을 금세 뒤쫓았습니다.
라반은 자신의 드라빔을 찾기 위해 야곱의 모든 소유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의 정직과 억울함과 의로움을 토해내듯 쏟아냅니다.
드라빔이 자신의 아내에게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지 않으셨다면 야곱의 이런 성취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야곱은 알지 못하지만, 라반이 떠나간 다음에
자신의 아내에게서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야곱은 정말 간담이 서늘할 것입니다.
어미의 태에서부터 살길을 궁리하고 모색했던 야곱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시는구나.’
이런 선택들 앞에 나의 의로움 또한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청년부에서 임원으로 섬긴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포기한 이유는 청년부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제 갈길을 찾지만, 맡은 자가 떠나버리면 공동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리더쉽으로 또 다른 후배가 세워질텐데
후배도 똑같은 경우를 만나게 되면 공동체를 버려두고 떠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선배의 선택들은 후배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나는 당시에 속으로 웃으면서
‘영어를 배울 기회를 놓쳤으니 외국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해마다 외국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까마득한 이 날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해야 하지만,
주님이 나를 살게 하신다면 나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