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온유가 자라서 유년부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어와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온유가 다니는 교회는 규모가 있는 곳이라
아이들을 위한 이런 저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다른 작은 교회의 형편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안이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어제는 크지 않은 상가교회의
주일학교를 탐방하며 기도했습니다.
4년전에 네 명이서 시작한 주일학교가 이제는 방 하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주일학교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안이 프로그램?자체라고는?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주일학교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어릴적부터 주일학교를 다녔지만
교회 장의자 밑을 기어다니며 장난친 기억뿐입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등부 첫 수련회때는 모두가 잠들었을 때
혼자서 이불안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장의자 밑을 기어다닌 아이가
갑자기 바뀐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수없습니다.
다만 주일학교를 다니는 동안
열매가 없다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품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자란 풍경들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형이 중학교 다닐적에 기타치며 찬양하던 모습들..신앙의 선배들을 보며..
나도 중학생이 되면 예배에 진지해져야 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생각 자체는 허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고 만나는 풍경들은
어린시절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주일학교에 누구나 적용가능한
체계적이고 건강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또는 교회에서 주님을 향한 마음들을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면
지금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당장에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아이들의 마음은 거기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변화될거라 믿습니다.
온유는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여태껏 초등학교에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일주일을 계속 아파서 아직 초등학교에 연착륙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침마다 초등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저께 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학교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
이제 식사할 때마다 눈을 감고 기도해.
왜냐하면 이제 다 컸으니까 해야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유치원때는 부끄러워서
눈을 뜨고 기도한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주님을 향해 작은 한걸음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조금씩 우리의 마음을, 아이들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씩 주님의 은혜로 자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