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즈음부터 이리?저리?마음이?불편했다.
봄을?타는?건가?
여전한?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하나님의?나라를?꿈꾸는데
왜?이렇게?나를?잡아?끄는것들이?많은가?”
이?질문에?대한?답은?이미?확인한?바다.
이게?현실이라는?것이다.
예수님조차도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데
수많은 장벽들이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다.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이 땅은 영적 진공상태이거나, 비현실적인 이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물리적인?환경외에
추가적인 질문은
마음의 문제이다.
‘내?마음의?문제는?왜?이런가?’
‘물리적인?환경은?나를?몰아세워도
그냥?내?마음은?늘?평안하기만?하면?되지?않을까?’
‘지금 내?마음은?왜?이럴까?’
사람들마다?불편할?수?있는?여건은?모두?다르다.
내 경우에는 오해받을?수?있는?상황.
특히?나는?정당하지만?억울한?상황에?대해서?힘들어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자기의가 많아서일 수도 있다.
어쨋든, 그런 연유에서 나는 다윗의?심정을?보다?잘?이해할?수?있었다.
사울왕에게?쫓긴?것?까지는?이해할?수?있지만
나발처럼 자신의?마음을?훼손하는?모욕에?대한?부분은?참을?수?없어서
다윗은 부하들에게 칼을?차라.?라고 분개했다.
또는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는 십여년의 시간을 보내며
사무엘에게 기름부음받은 사실을 아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주님을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선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리 저리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내?마음이?불편할?때?이런?생각이?들었다.
과연 내?마음이?불편하지?않았다면 두 가지의 유익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한 가지는
‘나는?기도했을까?’
나는?불편한?마음을?가지고?끊임없이?기도한다.
마음으로도, 내 입술로도 끊임없이 주님을 찾는다.
오?주님..
끊임없이?주님의?이름을?부른다.
심지어?잠꼬대로도?나는?주님의?이름을?부른다.
그것은?이?땅에서의?한계와?동시에
내?마음을?아시는?주님에?대한?갈망이다.
물론?불편하지?않는?마음으로도 여전히 나는?주님을?노래할?수?있다.
꼭 고난과 아픔을 당해야만 기도하는가?
보통의 상태에서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하지만?그?절박함과?절실함은
우리가?인간인지라 전혀 다르다.
결국?이?불편함과 부족함이?주님을?향한?나의?갈망을?더해가는구나.
고난이 나의 구원을 더하여 주는구나.
주님을?더욱?바라보게?만드는구나.
나머지 한 가지는,
이?마음?때문에
나의?허기?때문에 누군가를 이해할?수?있거나 위로할?수?있는?것이다.
그것은?마치 ?내 상함 심정을
성경속의 다윗의?심정을 통해 살피고 위로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왜 이 마음을 허락하셨는가?
이런 두 가지 유익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나하면 거미줄처럼 얽혀진 수많은 상황과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이유속에는?말 그대로?거지같은?내?성질이나 실수들이?있을?수?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여전히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기로 한다.
시편 63편은 다윗이 유다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다.
이 시는 아마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급히 도망했을 때 지은 시일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절에 자신을 왕이라고 표현하는 등을 봐서
그가 사울왕에 쫓겨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광야에서 고난을 겪은 적은 압살롬의 경우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곳에서 우리가 춤추며 찬양할 때 불렀던 바로 그 노래를 지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나이다.”
그는 원수의 멸망이나, 왕궁으로의 복귀, 자신의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자. 곧 언약적 사랑을 노래하며
주님의 이름을 노래했다.
다윗이 아들의 반역으로 인해
광야로 쫓겨났지만
그의 영성은 광야에 이르렀을 때 다시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그는 광야에 있었지만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처럼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광야이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성소다.
이 성소라는 말은 원어로 <코데쉬>라는 말인데
거룩한 장소, 구별된, 거룩함 같은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삶이 비록 누추하고 절망 가득해 보이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삶의 터전과 이곳이 바로 거룩한 곳, 성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