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는 중 후배는 대화중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배는 책임감때문에
더 부지런히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혼자일 때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무엇하나 아쉬울 게 없다.
주님으로 충분할 때도 아쉬울게 없지만
원래 목가적인 삶을 추구하던 사람이기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리 욕심내지 않고, 또는 천국을 침노하지 않고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성격이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고 나는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기에
원래 내가 가진 기질보다 힘을 내어 일을 도모할 경우들이 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무거운 짐과도 같지만
이 무거운 짐은 내 성격에 반하여 열심을 내게 한다.
내가 만나고 섬기는 사람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만나기 전에 나는 늘상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다.
내가 만난다고 무엇이 변하겠어.
그런데 만나고 그들을 섬기다 보면
작은 변화와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주님이 하신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있으면 피로해진다.
하지만 주님은 내 환경과 여건을 만드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아버지의 뜻과 결부하지 않으면
나는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이 환경을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고난과 광야의 시간은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과정이다.
나는 그 광야속에 나를 내어놓는다.
성실하지 않는 내게
책임감이라는 옷을 씌우시고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면
나는 기뻐함으로 그 길을 걸어가리라.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한 유다광야에서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성소는 구별된, 거룩한 곳을 뜻한다.
뜨거운 바람과 마실 물 찾기 힘든 척박한 땅이지만
주님의 뜻이 거하시는 곳,
주님이 나와 함께 머무시는 곳,
장소를 너머 그 모든 시간은
주님의 성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