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가 5살 때,
집에 돌아오니, 온유가 오늘 그린
그림을 보여줬습니다.
전 간혹 그림을 그리면서 제목을 정하는데,
온유는 항상 미리 제목을 정해놓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서 온유가 그린 그림에는
저마다의 분명한 의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온유에게 답을 듣기 전에
그림의 제목을 알아맞히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이번에도 한참을 보았지만 도무지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어서
온유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그림의 제목은
<쉬가 마려운 사람>이라네요.
쉬가 마려우면 온몸에 전기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런 표현을 했나봅니다.
제목을 듣고 보니 ‘아. 그렇구나.’ 싶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 아이가 고양이를 그렸는데,
꼬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물었습니다.
“이 고양이, 꼬리는 어디 있어?”
그러자 아이는 “여기.”라며 잡고 있는
펜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고양이 꼬리는 펜 안에,
아이의 의도 속에 숨어있다는 말이지요.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온유의 그림 속에도
저마다의 의도가 숨어있듯
세상의 모든 작은 몸짓에도
의도는 있는 거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인생에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