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기도가 필요한 친구에게 용기내어 기도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결혼을 배우다. 를 읽고 결혼을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넘어 제가 품고 있는 몇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주님이 전해지길 바라는 소원입니다.
내게 주님은 종교적 신념이라기 보다는 인격적인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지인을 만나 함께 기도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아가서 기도하겠다고
마음으로 약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난과 아픔이 가득한 지인에게
묵상한 느헤미야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청했습니다.
하나니에게 들은 훼파된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주저앉아서 여러날동안 금식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죄와 동일시하여 회개했습니다.
“.. 주께 지은 죄를 제가 고백합니다.
저와 저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느1:6)
보통은 죄를 지은 곳에서 멀리 떠나
내 손은 깨끗합니다. ?라고 말하지만
느헤미야는 자신과 관계없어 보이는 죄를
자신이 품고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지 모르는 이 사실을 먼저 회개하면 좋겠다고.
죄가 없으신 분을 찾으라면
유일하게 한 분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내 죄를 자신의 죄인 것처럼 처절하게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의 종인 제가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페르시아의 왕이 저를 돕게 해 주십시오.” (느1:11)
흔히 기복적인 신앙, 기복적인 기도를 비판하는데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그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이 기도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 기도가 가르키는 목적과 방향에 있습니다.
주님, ?주님의 기뻐하시는 목적과 방향을 알려주시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을 품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잘 된다는 것이 세속적인 우리 생각과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주신 말씀에 순종해서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겨지고 매를 맞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행16:22)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인생이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인생이 잘 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보기 좋았더라.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