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집회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당연히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 모여있을줄 알았는데
말씀 전 찬양시간 분위기가 냉랭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처음 교회에 나온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려 앞에 나왔을 때 시위하듯
바닥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에서 말씀을 전하는 바울에게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행18:10)
이 말씀이 내 마음에 가득해서
눈에 보이는 불편함은 도리어 감사했습니다.
비록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제가 아니어도
그들에게 복음이 씨앗이 심기기를 내내 기도했습니다.
답을 알 수 없어서 주님께 물었던 공허한 시간은
도리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감사했습니다.
주님 주시는 마음을 따라 급히 말씀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나는 장난반으로 어릴적에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산다는 의미와 기쁨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수능을 치르고, 인생이 실패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에는
누군가에게는 적절한 변명이 되어버리기도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지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조차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를 지으신 분이 누구인지,
그래서 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뜻과 계획을 가지신 분이 누구인지를 일러줄 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그것을 마음에 담고,
주님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묻기를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그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