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이 감옥에 갇히게 된 사실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비교하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은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흔히 말하는 것처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기에
죽는 것도 좋다는 의미로 읽히지 않습니다.
다음 구절에 있는 내용처럼
육신으로 사는 것이 열매 맺는 일이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사는 것은 그리스도, 죽는 것은 열매 맺는 일로 구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고백은 정말 내 가슴을 흔드는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다시 표현해 보자면,
감옥에서의 바울은 죽는 것이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립고 바라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향에서 왕을, 연인을 마주 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는 것은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부터 이 문장을 계속 읽어 나가며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 대합니다.
언젠가 미국에서 머물던 숙소에서
잠결에 주님이 ‘내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는지’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지체 않고 대답했습니다.
“주님, 주님을 보고 싶어요.”
그 고백은 진심이었습니다.
온통 회의적이기만 한 세상에서, 그리고 모순된 교회에서
실망하고 회의하며 나는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절망 같은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은 빛이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으며 우리는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책임을 받았습니다. (빌1:29)
어떤 특정한 것이 고난이라기보다는
모순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다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기에
이 땅에서의 삶은 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에 주님은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런 중첩된 소망과 절망과 감사와 회의를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나그네에게 참 많은 욕망이 가득합니다.
하덕규님의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에는 왜 이렇게 내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앞서 살펴본 바울의 고백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주님이 그저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바울을 노크하면 주님이 손 흔들며 나오실 것 같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빌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