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

주일 오후에 온유는
교회에서 ‘어와나 ‘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마칠 시간에 맞추어 온유를 데리러 갔다가
멀리 앉아 있는 딸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사람들 몰래 하트를 보냈는데
그 찰나를 선생님 한 분이 사진으로 찍었나 봅니다.
사진을 받아보고 아내와 함께 배꼽이 빠지도록 마구 웃었습니다.
내가 저런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와나에서는 매 주 말씀을 암송하는데
복습하는 단계라서 이번 주에는
말씀 9개를 암기해야 했습니다.
교회로 향하는 내내 차 안에 말씀이 가득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여러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시국과 관련된 대통령과 그 책임에 대한 답답함들,
여러 정치적인 심각한 문제를 너머
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교회의 문제까지 함께 뉴스로 접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만
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선택을 해나가는 걸까요?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믿음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일까요?
 
현실에서뿐 아니라 성경에서도
수많은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삼하3:9)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이루게 할 것이라는 이 말은
아브넬의 멋진 믿음을 드러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자신의 치부를 지적한 그의 왕 이스보셋을 협박하는 말입니다.
다윗을 대적하던 적군조차도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실속에서는 각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칫, 정치적 이념이 신앙의 옷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고
그가 왕으로 있을 때 통일 이스라엘은 놀라운 번영을 경험했지만
그는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살아갔나요?
 
우리는 자주 기도합니다.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여주세요.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세요.’
하지만 주님이 당신을 드러내시고
그의 마음을 보이셨을 때
우리는 과연 그분의 마음을 따라 순종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유석경 전도사는 아버지가 직장암으로 돌아가실 때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가능한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본인도  직장암으로 심각한 아픔 속에 있다가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도
그녀는 감사와 찬양을 멈추지 않고 말합니다.
 
“숨이 멈추고 단 한 번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되지 않으니깐,
정말 나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아버지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계속해서 진리의 말씀과 아버지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생명을 주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모든 것이 주어져도 그 분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지 못할 것 같은데
모든 것이 결핍된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는 그분의 사랑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딸을 향해 하트를 보내는 사진을 보며
당신의 자녀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부끄러워 내 마음은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말씀을 통해 그분의 길을 가르쳐 주세요.
그 길 위에서 온통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