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 하나를 만났습니다.
딸 온유와 같은 나이인데도
태어나 지금까지 입으로는 아무것도,
물조차도 먹지 못합니다.
아빠와 엄마는 긴 시간 동안 이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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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는 세 살 위인 언니가 있습니다.
언니에게도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데
상대적인 결핍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본인도 아팠는데 참고 참았다가
작년에야 늦게나마, 다행스럽게
아픈 상처를 수술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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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아침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은
어느 집이나 분주하지만
이 가정은 더욱 정신이 없습니다.
아픈 아이는 배에 호수를 끼워서?
특수분유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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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초등학교로,
아픈 아이는 장애학교로 데려다주고?나서야
엄마는 겨우, 잠시 동안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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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등학생인 언니가 엄마처럼
아픈 동생을 안아주거나, 손잡아 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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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배꼽에 호수를 껴놓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들이 놀리기 일쑤예요.
그러면 나는 화가 나지요.
그런데 언니가 이렇게 설명해 주어요.
‘내 동생은 지금 조금 아파서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 거야.
크면 건강해져서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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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언니가 있는 반에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어서
모두가 놀려대고 짝을 하지 않으려 했대요.
그런데 자기가 아픈 아이의 짝이 되겠다고 자진했다고 해요.
저도 몰랐는데, 나중에 학교에서 상담할 때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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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를 보면서도 마음이 아팠지만
아픈 아이의 언니 이야기를 들으며?
목구멍으로 꿀꺽하고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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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의 짝이 된 언니의 모습을
자꾸만 자꾸만 연상하게 됩니다.
언니가 느낀 결핍의 시간은 외롭고 아팠지만
그 시간을 통해 다른 누군가는 알지도, 만지지도 못할
보석 같은 마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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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참 많이 힘겨웠을 때
밤마다 교회에서 울면서 기도한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서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3개월이 지날 즈음 제 기도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솜 이불 같은 마음을 주세요.
그래서 커다란 돌이 날라와도
소리 없이 받아낼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정말 내가 구한 그 마음을 주셨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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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낳고..” (롬 5:3)
여기서 인내로 번역된 말은?
변치 않는 기다림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버티어낼 수 있는 체력이나 깊이를 연상합니다.
환난은 우리에게 힘겨움과 슬픔을 안겨주지만
그 시간은 우리에게 비밀스러운 열매를
만들어주는 씨앗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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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앞두고 주님의 마음을 구합니다.
한숨 쉴 수조차 없이
아프고 눈물 나는 사람들과
오늘의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해
닳아지고 해어진 우리 마음,
질그릇 속에 보배처럼
주님 이곳에 찾아와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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