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소서

교계와 교회에서
크고 작은 뉴스들이 쏟아졌을 때
그들이 만난 하나님은 거짓된 신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한 글과 말을 떠올리면
거짓된 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만난 은혜도 진짜고
그들이 만난 하나님도 맞지만
어쩌면 기억에 관한 문제는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만나주셨는지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잊은 것은 아닐까?
 
기억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노아의 때에 홍수가 가득할 때에
하나님은 방주에 있는 모든 이들을 ‘기억’하셔서 
물이 줄어들게 하셨으며 (창 9:15)
노아와 언약을 맺으실 때도
무지개를 보고 이 언약을 ‘기억’하셔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9:16,29)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때도
아브라함을 ‘생각(자카르)’하셔서 롯을 구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실 때에도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신 후 돌보십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리실 때
사무엘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삼상 15:17)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그는 얼마나 신앙과 성품이 준수했는 사람인가요.
하지만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 
왕이 된 이후 잊어버렸습니다.
 
어떤 면에서 크고 작은 뉴스 속에
이슈들은 일반 사람들의 일상 속에
일어날 수 있는 범죄나 실수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난히 분노하거나 실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추론하지만
그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이유 입니다. (민 20:10-11)
모세의 기나긴 순종과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 비해
지팡이로 반석을 친 사건은
얼마나 작고 사사로운 일인가요?
그런 이유로 가나안땅을 들어가지 못한다면
약속의 땅에 발 디딜 수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몇 명이나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12:47-48)
 
예수님은 주인의 뜻을 아는 자를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뜻을 아는 자라면
그 뜻을 아는 만큼의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와 소명이가 똑같은 잘못을 했지만
첫째가 조금 더 꾸지람을 듣는 이유는
같은 행동을 했더라도
첫째는 잘못된 행동인 것을 알고 있는 반면에
둘째는 첫째를 모방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에게
그만큼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사사로울 수 있는 일에도
주님은 더 많은 책임을 묻게 될 것입니다.
 
과할 정도의 책임을 물으신다면
주님의 마음을 많이 알고 있는,
주님께 많이 맡은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울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시절처럼
다윗에게도 양을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이새의 막내아들에게
기름부으신 하나님은 그가 왕이 되기까지
길고 긴 여정을 광야에 두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는 이가 누구인지
그가 왕이 된 이후에도 기억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내게 광야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것 같습니다.
 
 
#나는누구? #하나님은어떤분? #스스로를작게여길때 #하나님이기름부으셨다
#나의나된것은 #주님의은혜입니다 #많이맡은자에게 #많이찾을것입니다
#그래서더욱은혜를구합니다 #기억과잊혀짐 #자카르 #주님의구원열쇠
 
 
– 주제를 따라 쓴 탄탄한 글이 아닙니다.
매일의 큐티 본문을 묵상하며 쓴 일기를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다시 풀어쓴 글입니다.
 
가끔 반박하는 문자가 와서..
함께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정도로만 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