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가?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들면?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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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선택들 앞에서
고민하고 결정할 때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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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여러 도움을 구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몇 개는 거절을 하고
몇 개는 도와준다고 말했습니다.
도와준다는 말이 뭐가 어려워서
거절하느냐 물으면 할 말도 없지만
그 시간을 비워야 할 뿐 아니라
나머지 빈 시간은 그 시간을 갚으며
현실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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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평범한 하루 앞에서?낙담하거나
한없이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 같은 하루 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기쁨으로 가득한 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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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제사장들로 구성된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인정했고
부활이나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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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신들의 안정적인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더욱 부활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활을 믿게 되면
사회구조적인 개혁의 위험성을
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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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결혼과 대를 잇는 상황을,
부활이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질서는
전혀 다름을 말씀하셨습니다. (눅20: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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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논리와 이해로는
가늠되지 않을 그 나라의 이야기.
영생이 그저 죽지 않는
영원한 인생의 연장이라면
얼마나 지루하고 슬픈 삶일까요?
그 나라는 주님과의 끊임없는 사귐이 있는 나라,
주님의 통치함이 있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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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이 인정하는 모세오경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눅20:37, 출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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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서 부활의 때를 기다리며
주님의 품에 살아가는 이들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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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는 살아 있다” (눅20:38b)
여전히 살아있는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믿음,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신실하게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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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부정하게 되면
사두개인처럼 현세적이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부활을 믿게 된다면,
정말 부활을 믿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질문합니다.
아마도 이 땅의 삶이
전부인 것 처럼 살지는 않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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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은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멈춰 서서 오늘의 하늘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