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초대를 받아 다음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연구위원으로 돕고 있는 꿈꾸는 장학재단과의
콜라보를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감격스런 간증과 
다음세대를 위한 전진기지로써의 역할을 생각했습니다.

건물의 층층을 구경하다가
4층 도서관에서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이민아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몇 번을 눈물 흘렸는데,
그 도서관은 아버지인 이어령 교수님이
다음학교에 기증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하심은 이렇게 놀랍습니다.
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면
주님을 믿겠다고 고백하셨던 어른이
딸이 결국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주님 계신 곳에서 딸을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늠하지 못합니다.
고난받고 박해받아서
더이상 자라지 못할 것 같은
작은 씨앗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매 맺게 됩니다.

언젠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도무지 함께 할 것 같지 않은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지만 둘 사이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잔칫날에 언제 그랬냐는듯
공동체는 한데 어울려서 웃고 떠들어 댔습니다.
그 모습이 동화 속 한 장면 같아서 한참을 멍하게 쳐다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냉랭하고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 처럼 보여도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그 마음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승우의 최근 소설 <사랑의 생애>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그걸 가질 수 없다는 걸 모르게 된다.
잘 알다가도 갑자기 모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걸 모르는(모르게 된)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만 그걸 모른다.
모르니까, 모르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연인의 마음을 기자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아무리 필사적으로 매달려도 가져지지 않으니까
(가질 수 없으니까) 괴로워진다.
매달릴수록 더 괴로워진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확대해서, 마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