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픈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 나는 누구인가요?
나는 끊임없이 주변과
나를 비교하게 됩니다.
가나안정탐꾼들의 시선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 앞에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세상앞에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가요?
그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
거기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과 비교하고 있나요?
세상과 나를 비교할 때
나는 메뚜기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과 세상을 비교해야 합니다.
주님과 세상을 비교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주님이 약속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주님의 약속에 기대는 것이 두렵다면
주님에 대한 이해와 전제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게 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앞으로 살게 하실 주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이유는
주님이 내 마음처럼 갈팡질팡하지 않을까?
나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해버리지 않을까?>

<사진을 찍을 때
더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 좋은 눈을 가지고, 더 비싼 장비를 가지고 찍는 사진

이스라엘의 비행기에서.
나는 은혜로 찍는 사진.

재능 많은 사람들은
더 높아지려 하지만
원래 내가 어떤 존재였느냐를 생각하면
그저 은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나는 하나님을 위해
이러 저러한 사진을 찍습니다.
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주님의 잔치에 나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저 긍정적인 사고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세상의 두려움이 긍정적인 사고를 압도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대단한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용기가 위협의 순간에서
닭이 세번울 때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연약하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주님을 위해 죽어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없지만 사랑하기에 죽어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믿는가?
주님을 믿지만, 그리고 은혜로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은 형편없어 보인다.
그게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가?
현실세계를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
주님은 내 부족한 사진에 대해 
특별하다라고 말씀하신다.
특별하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이다

무엇을 하건 기도하라.
그 기도를 사용하신다.

티벳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나는 하나님이 그런 방식을 통해 일하신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다.

 

역사속에서
소다가이찌가 그렇게 해서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고
박에스더가 최초의 여자의사가 되었다.

티벳 승려도
내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신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나는 기도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