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보다 아빠가 좋아요

 
낯선 곳이라 소명이와 손을 잡고
몇 번을 함께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쉬를 하고 나왔는데
조금 있다가 응가를 하고 싶다 그러고
응가를 하고 나왔는데
다시 쉬를 하고 싶다고 그러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데
소명이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습니다.
 
“아빠, 나는 나보다
아빠가 더 좋아요.”
 
이 말이 며칠이 지나도
내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여전히 두 아이는 잠들 때가 되면
누가 엄마와 더 가까이서 잠을 잘 수있을지
차례를 정해 다투어가며 엄마품에 파고듭니다.
 
엄마보다 아빠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몸안에서 자라고
태어난 아이들이라 그런것 같습니다.
 
아빠는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물리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빠와 
보내느냐를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아이들과 보내는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목사님이자 부흥사셨습니다.
일주일에 거의 4일 이상을 집회 때문에
항상 집을 비우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내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거나 잊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 차라리 귀찮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빠에게는 자녀와 함께 보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시간에 자녀들에게
내 사랑과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목숨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녀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일하셨습니다.
친척의 빚보증을 잘 못 서는 바람에
어머니는 나를 낳고도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신 채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집은 늦은 밤까지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일하시던 가게 앞
철조망에서 공을 차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종일 일하시는 대신
일을 도와주시는 할머니가 가끔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없어서
내 도시락은 늘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서너 달에 한 번은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싸주셨다고 말씀하지 않아도
그날은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밥통 하나에 반찬통이 네 개나 되었고
거기에 설탕을 올려놓은 누룽지가 덤이었습니다.
 
그 도시락을 보고 
엄마의 사랑을 묵상한다거나
감동한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셨구나’
그냥 쉬는 시간마다 반찬통을 꺼내서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추억들은 시간과 함께 쌓입니다.
엄마가 바쁘셔서 신경 써주지 못하지만
아주 가끔이지만,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시면
내게 이 정도야.
엄마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지.
 
아빠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지만
아빠의 빈자리를 대단한 선물 보따리로
대신하는 것보다
아주 사소한 시간들,
몇 번이고 웃으며 화장실을 오가는 시간들,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해주고
헤어질 때 아쉬워서 꼬옥 안아주는
일상의 시간에 진심을 담으면
그 진심이 아이들에게도 쌓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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