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를 향한 기도

케잌에 불을 붙여서 급히
소명이의 생축을 하고
금요성령집회를 왔습니다.
 
종일 놀아서 피곤했던지
도중에 소명이가 졸려 했습니다.
눕혀서 재우려고
교회의 한 공간을 찾았습니다.
 
부모님이 예배드릴 동안
초등학생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대화의 내용이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마다 
심한 비속어와 욕설이 가득했고
마음에 안 드는 친구에게
린치를 가해서 왕따시키자는 내용들,
문장을 옮겨 적기에도 부끄러운 단어들.
게임의 파열음마다 내뱉는 욕설들..
아직 너무 어린 아이들인데..
 
좋은 습관은 익히는데 오래 걸리는데
나쁜 습관은 금방입니다.
말의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때 말끝마다 지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나도 몇 번을 따라 하다가 입에 붙어 버렸습니다.
친구가 ‘너도 이런 말을 쓰냐’는 얘기에 
아차 했습니다. 
 
요셉이라는 성경 이름 때문에라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짝궁에게 내가  이 말을 쓰게 되면
나를 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거의 몇 주일을 맞았습니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튀어나온 말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개인기도를 시작하는 
찬양 반주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반자동적으로 
음악을 허밍으로 따라 불렀습니다.
익숙한 음정을 따라 노래하지만
누군가는 구석에서 야동을 보다가 
친구에게 걸려서 자기들끼리 떠들썩합니다.
여전히 입에는 욕설이 가득합니다.
 
기도하는 자리로 
옮겨서 엎드려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겠습니까?
“너희들 교회에서는 이러면 안돼.”
이런 말들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면 교회 밖에서는 이래도 되는 걸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아이들이
교회 나와서 예수님을 알게 되면
알지 못했던 사랑을 만나게 되어 감격할 테지만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교회 문화와 전통에 익숙할 데로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
 
한편에서는 교회에 머물러 있어주는 게
고맙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답은 여전히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하나둘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전적으로
부모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은 어떠했습니까?
다윗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한 단면으로 판단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소명이 친구 진서가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예배를 드리는데
아이가 떠들어서 조용히 주의를 줬다고 합니다.
“엄마 나한테 한 번 맞아볼래?”
갑자기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도대체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켰으면
아이가 저럴까 싶겠지만
진서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모릅니다.
아이의 모습 하나로 여러 가지를 속단할 수 없습니다.
 
주님 어떻게 합니까?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내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나 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악한 시대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은 우리가 살며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
어쩌면 다른 유전자를 가진 세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손바닥 안에서 모든 세계를 연결하고 
온갖 악한 것을 마주 대하고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전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고전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나도 자녀를 둔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온 말들도
듣고 놀랄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애타게 부르는데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마음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을 버리신 후,
대체할만한 유능한 인재를
찾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새의 막내아들에게 기름 부으시고
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아기 모세를 강물에 띄우셨습니다.
 
사사기의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깨뜨린
한나의 아들 사무엘과
말라기 이후 침묵의 시기를 깨뜨린
세례요한의 어린 시절들..
하나님은 문제 자체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바라보십니다.
 
아이들의 아직 어릴 때
하나님은 내게 몇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많이 안아주고
만날때마다 손을 얹어 기도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고..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뛰어나고 똑똑한 아이로 기르라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아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교회 문화에만 익숙해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돌아보면 나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악한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주님, 이 기도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백성을 구원할 
다음 세대를 당신의 방식으로 
기름 부으시고 일으켜 주세요.
 
우리에게 말씀하신 물맷돌이
작다고,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겠습니다.
이 시대의 골리앗과 같은 어둠을 깨뜨릴 수 있는
주님의 사람들을, 다윗과 같은 주님의 용사들을 
기름부어주세요. 세워주세요. 일으켜주세요.
 
 
#어둠 #악한시대 #욕 #비속어
#음란 #스마트폰
#예수님을사랑하는
#다음세대아이들
#기름부어주세요 
#사무엘처럼 #세례요한처럼 #다윗처럼 #모세처럼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