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시는 음성,
나는 그것을 음성으로 들은적은 없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의사소통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그것은 꼭 음성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일 경우가 많다.
나는 그것을 음성으로 들은적은 없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의사소통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그것은 꼭 음성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일 경우가 많다.
말씀과 주변의 정황과 사람들, 나의 상태..
속에서 주님이 내게 말씀하실 때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내 생각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주의 사자가 사마리아에서 사역 중이던
빌립을 광야로 내몰았다.
그가 순종했을 때 에디오피아의 고위관료 내시를 만났다.
마침 그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고
빌립을 통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우연이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우연이다.
결과가 없으면 헛고생이다.
하지만 결과와 시간을 알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평가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한쪽만 알고 있다.
아무래도 내 편에서의 사정만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세계의 정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필이면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고위관료를
하필이면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던 그를
하필이면 박해를 기점으로 사마리아로 넘어온 빌립과
하필이면 광야 한 가운데서 만나는 이 절묘한 상황
얼마나 많은 일상속에 우연이라는 말을 하나님을 지워내고 있는가?
이 만남을 통해
땅끝에 사는 외국인, 그것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 수 없는 내시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발생했다.
주님의 백성이 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찢어낸 그 휘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 주님의 사랑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땅끝에 사는 외국인, 그것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 수 없는 내시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발생했다.
주님의 백성이 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찢어낸 그 휘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 주님의 사랑이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