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은 눈 앞에 기적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한다.
이고니온에서 표적과 기사가 있었다.
하나님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그런 능력을 행할 수 있게함으로
은혜의 말씀을 확증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갈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보지 못하지만 믿는 사람이 있고
보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 광야 속에서 그것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고통하는 시기에
과연 주님은 침묵하고 계셨는가?
끊임없이 선지자와 예언자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보이지 않지만, 하지만 보는 것보다 더 가득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길 원합니다.
2. 짧은 문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이동한다. (행14:1-18)
이동할 때 키워드는 복음과 핍박이다.
핍박이 있어서 그들은 피했지만
동시에 피한 곳에서 다시 복음 전도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거리를 두고 읽는 이유는
본문이 말하고 있는 박해현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예수님을 전한다고 해서
돌로 치려 하는 무리는 없다.
다만 신자본주의 시대의 물결 앞에서
복음을 전하거나, 돌로 치려 하는 대신
모두 생계에만 몰두한다.
당연하고 상식적은 이야기지만
믿음은 어떤 영역인가 생각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각각에게 다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서
사단의 세력은 이 시대의 흐름에 대해
아주 흡족해 하고 있지는 않을까?
며칠전 수련회에서 사진으로 강의를 풀어 나갈 때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돈과 명예와 좋은 대학과.. 이렇게 모두가
몰두하는 가치 이외에도
주님이 주목하고 있는 가치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가치가 맘몬 아래에 눌려져 있다.
스며드는 세력들, 위협들, 믿음과의 싸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