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반목은 분명히 부끄러울 수 있다.
위안이 되는 것은 이조차 하나님 안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야곱과 그의 두 아내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그들 가운데 태어난 아들들.
한 가정안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고
문제의 당사자였던 야곱은 끝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갈등을 통해 이스라엘 12지파가 만들어졌다.
바울은 마가의 일로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었고 (행15:37-39)
이 일 자체를 성경은 전혀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을 신화적 인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복음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서로의 관점을 중심으로 옳고 그름이 대결하면
심각한 파열음을 내며 갈라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로 나뉘어 선교를 떠났다.
바울은 바나바 대신 실라와 선교를 떠났고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을 중심으로 성경을 기록한다.
하지만 바나바는 지난 실수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가를 품어 주게 됨으로 다시 기회를 준다.
성경이 이들의 시간을 다 기록하지는 않지만
후에 바울은 그의 마지막 성경에서
마가 요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그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 말한다. (딤후4:11)
사람은 어김없이 변하지만
그 변화는 마가 뿐 아니라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을 기다려 주어야 하는가?
동시에 기다리는 동안 소모해야 하는 시간도 있다.
그 시간에 함께 있는 자의 시간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동시에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달려간 자의 시간 또한 가치있다.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판단은
결국 자기 기준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갈라서 보이더라도 여전히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시간이 더해지면 주님앞에 섰을 때 어느 지점에 서있는가?
내 마음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