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아르테논 신전이 있는
언덕, 아레오바고에 서서 바울은
언덕, 아레오바고에 서서 바울은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
같지 않은 두 철학에서
각각의 접촉점을 찾아가며
예수님을 전한다.
내가 진심을 말하는 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예수님을 전한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분도 아니요.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안에 계시지도 않는다. (행17:24-25)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누구인가?
언젠가 조나단에드워드의 첫번째 논문의 주제
천지창조의 이유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수많은 논증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자기 자신의 영광.
우리가 이해하거나 다가가지 못할 그 완전함.
바울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었지만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조롱하였고
어떤 사람은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행17:32)
누군가는 바울의 실패한 설교라고 평하지만
누군가는 바울의 실패한 설교라고 평하지만
순종. 그 자체가 성공이다.
그저 떨어진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는 것이 바울의 목적이 아니다.
사나 죽으나, 무엇을 먹던지 마시던지.
시간의 거룩함앞에 순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