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생각 #내책임아니다 #이리떼와의싸움
“분명히 말하지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멸망에 빠진다 해도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 (행20:26)
에베소 장로에게 바울이 말했다.
냉정하지 않은가?
몇 년을 함께 지낸 그들에게
당신들이 멸망에 빠지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선을 그어야 하고, 구분이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책임지지 못할 영역이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헌신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주저함 없이
그들에게 모두 전파했다. (행20:27)
이에 바울의 몫이다.
이에 바울의 몫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것은
바울의 몫이 아니다.
물론 휙 던져놓고, 받던지 말던지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의 언어를 담고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미혹되지 않도록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의 언어를 담고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미혹되지 않도록
전하는 것까지 바울의 몫이다.
하지만 그 이후는 그들의 몫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라 말씀하신다.
다만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인데
그들을 돌이키는 것이 에스겔의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까지가
에스겔의 소명이다.
바울이 떠나면
교회는 흉악한 이리 떼가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행20:29)
교회는 아무 싸움없이 평온한 상태의 목가적인 공간이 아니다.
교회는 아무 싸움없이 평온한 상태의 목가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끊임없는 싸움이 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싸워 나가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갈등없는 곳을 꿈꾸다 보니
가까이에는 갈등 없는 고상한 인격이 그리스도인의 완성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기에, 부족한 자와의 만남속에는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시대는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거리를 두면 되는 것이다.
거리를 두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유지하다가
결국 첫 번째 강하게 부딪히는 시기가 결혼이다.
나의 고상한 인격을 사정없이 부딪히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해하게 된다.
너 때문에 천사같은 내가 괴물이 되었다.
아니다, 원래 괴물이었지만 잘 숨겨왔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결혼하기 전에 공동체를 통해
수없이 부짖히는 시기를 경험하는 것,
그것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 존재인지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위험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