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적응한다.
온유와 소명이가 어렸을때 사람들이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물으면 나와 아내가 아이의 말을 통역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제법 자라고 나니
이웃집 어린 아이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하지만 다시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 말을 알아듣고 통역한다.
자녀의 말과 목소리의 높낮이, 손짓과 발짓, 눈빛이 어린 감정을 통해
부모는 그 아이의 심정들을 이해한다.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바라보신다.
당신은 왜 내게 침묵하십니까? 라고 소리지르지만
내 언어가 아닌, 하나님의 언어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당신의 사랑이시며, 나를 향한 당신의 적응을 이해해야만 한다.
육신의 부모는 자녀와 함께 시간을 흘러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 시점에서의 최선을 아이에게 반응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와 비할바가 못된다.
날아오는 화살과 흑사병, 넘치는 재앙에 대해
시인은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시91:5-6)
내 곁에서 천 명이, 일 만명이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시91:7)
두려움. 내게 두려움은 하나의 큰 키워드다.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을
성경은 눈을 감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두려움의 대상에서 눈을 돌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두려움의 대상을 직시하되
두려움보다 큰 이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두려움보다 큰 이가 내 아버지라면
아버지보다 힘없는 두려움은 나를 위협하지 못한다.
눈을 감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대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힘이 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