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이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후배를 위해 기도하다가 요즘 묵상하고 있는
솔로몬과 다윗을 생각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의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법대로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
영광에 상징되는 구름으로 인해
제사장들은 그대로 서있지 못할 장면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이 헌신하여 드린 소와 양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부족한 게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았으며, 하나님을 경험했으며
하나님 앞에 헌신한 그들이었지만
왜 그렇게 급속도로 변질되었을까?
나는 며칠 동안 이 질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류의 사람들이 더러 나옵니다.
사울 왕은 겸손하고 리더쉽있는 지도자였지만
이후 교만한 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아사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대하14:11)
아사 왕은 전쟁에서도 기도했고,
선지자 아사랴의 말을 듣고 영적 개혁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어머니 마아가가 섬기는 아세라 목상을 불태우고
우상숭배한 어머니를 폐위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도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옥에 가두고, 백성을 학대했습니다.
 
시간 앞에 사람은 변하며, 사람은 자신의 선 위치에서
급속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의로운 롯은 자신의 도성에서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날마다 상했습니다. (벧후2:8)
 
과연 다윗은 어느 지점에서 달랐을까요?
그 답을 광야에서 찾으려 합니다.
세례요한도 광야에 머물렀기에
제사장 무리들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요셉과 모세에게도 같은 지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여전히 광야에 머물러 있는다면
그 시간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이것을 고백합니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합니다.”
상황으로 아파할때마다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감각적인 시대를 살아갈 때 이 시간들은
내게 더욱 필요한 시간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