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작은 변화와 작은 순종이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들은 순종과 변화가 쉽다고 여기기에
그 시간과 노력을
작다고 여기거나
실망하고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나 하나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들이 순종하지만
시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종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종은 안타까운 말이지만
표면적으로는 그 자체로 끝이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아마샤는 부족한 전투력을 보강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를 용병으로 고용했다.
자그마치 은 백 달란트.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이스라엘 군사를
전쟁에서 물릴것을 말씀하셨다.
 
아마샤는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내가 이스라엘 군대에게 준 100달란트는
어쩌란 말이냐?”
하나님의 사람은 아마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큰 분이신지를
아이에게 설명하듯 설득했다.
아마샤는 순종했다.
 
은 100달란트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전쟁에 사람을 살 수 있으려면
대충 얼마 정도의 비용일지 상상했다.
돈 10만원이면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이다.
하지만 10만원 이상이라고만 가정하고
10만 명이면 자그마치 10,000,000,000
100 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그 금액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아마샤의 순종 그 자체는 놀라워 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말한 말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대하25:9)
이 말은 하나님이 온 땅의 주인이심을
단순하게 그려볼 수 있는 크기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군을 물리고 난 후
아마샤의 군대는 에돔과의 싸움에서 크게 승리했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이스라엘군은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약탈하고,
삼 천명의 사람을 죽이고, 물건도 노략하였다. (대하25:13)
성경은 동화가 아니며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순종은 순종 그자체로 끝나야 하며,
 
그 이후의 파생되는 결과를 모두 아름답게 그려낼 수 없다.
이 일후에 유다의 평론가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전쟁에 참여시키지 않은
이유를 물어뜯지 않았을까?
아마샤의 순종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년은 아름답지 못했다.
하나님앞에 순종해서 한 모든 일이
결과까지 아름다울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순종했느냐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끝날에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