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구호및 복지단체에서 사용하는 상당한 비용이
행정비, 업무비, 유지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자비량으로 움직이고
필요한 사람을 직접 만나 도왔다.
그렇게 보낸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지나 내 이해의 폭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산적인 가치, 누군가를 돕는 것도 가성비를 따진 것이다.
누군가를 돕고, 섬기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돕고, 섬기기 위해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필히 조직과 행정을 생각해야 한다.
함께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필히 조직과 행정을 생각해야 한다.
그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나를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말씀을 사람들에게
막무가내로 강요할 수 없는 이유가
이런 맥락속에 있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일반적이지 않다.
내 기준과 삶의 형태를 누군가에게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주인은 누구신가는 불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주님 앞에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께 바친 예물과 십일조가 넘쳤다.
넘친 예물을 맡을 책임자를 정하고
공평하게 나누도록 했다.
3세 이상의 제사장, 20 세 이상의 레위인
그들의 가족들, 자녀에게도 그 몫이 돌아갔다.
(대하31:16-19)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
덕분에 그들은 주님을 예배하는 일,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섬겼다.
하나님의 몸을 이룬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