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상관없이
종교의 타락이나 암흑기와 상관없이
개개인이 주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은 정답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이유는
앞선 자들을 보고 따라 믿는 후배들이
앞선 자들이 넘어지며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대단하고 멋진 말로 걸어가다가
그들의 말과 걸음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몽상이었다고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다가
자신을 돌이켜 주님 앞에 서게 되는 이가 있다.
므낫세는 유다의 가장 악한 왕으로 기억하지만
그의 말년은 주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한 자로 살게 된다.
내가 전율했던 말씀,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대하33:17)
이 말씀만으로는 하나님께 제사 드렸지만
여전히 우상 숭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사실은 우상 숭배했던 산당이라는 장소가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용도변경을 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우리가 죄를 범하던 , 부끄러웠던 장소,
우상 숭배로, 거짓으로 점철되었던 장소가
이제는 용도가 변경되어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변화는 므낫세의 회개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극적 변화 앞에 완고한 자가 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
도대체 뭔가 싶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또 그의 아들 아몬.
인생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윗과 므낫세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신앙이 아닐 수 있다.
고난 혹은 광야.
흔들리는 시간이 도리어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은 오직 주님만 바라봐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