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탄생을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속에서는
놀라운 환호와 찬송이 울려 퍼졌다.
세상의 주인이, 세상에 스며 오신 것이다.
천사들은 얼마나 놀라워 했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왕이 그 일을 하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왕으로 세상에 오셔서
그가 보낸 시간은 누추해 보인다.
사람들에게 모욕받고
참 빛으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런데 그의 탄생을 두고 하늘은 선포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2:14)
같은 상황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믿음의 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상황을 상황 자체로 해석하게 되면
그리스도인은 누추하고 억울해야만 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님안에서 해석하게 되면
그 시간속에 당신의 지혜가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로마의 황제 아아구스투스를 향해
사람들은 세상의 구주라고 칭했다.
하지만 성경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변방의 구유에 세상의 왕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
이 탄생의 열매들은 세상을 바꾸어 나갔고
로마의 황제 조차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내가 보내는 시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마치 므낫세의 행적처럼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을 섬기고
자신의 아들을 불위에 죽이는
눈에 보이는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것. 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섰을때,
어제 아내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주 앞에 섰을때
부끄럼 없이 기뻐할 시간은
오늘의 연장선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