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겸손은 무엇인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다.
1차적으로는 듣되 듣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넘쳐나는 설교, 넘쳐나는 말씀 앞에
당연한 말은 당연한 말,
착한 말은 착한 말,
하지만 적용하게 되면 순진한 사람이 된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되 듣지 않았다. (대하36:12)
여전히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겼고
하나님의 생각 앞에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결정을 이어나갔다.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 분의 예언자를 보내 말씀하셨다. (대하36:15)
하나님의 열심 앞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되
내가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오래 참으신다.
그 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진리와도 같다.
사랑하신다는 말이
나를 마냥 내버려둔다는 말과 같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지만
사랑이라 생각한다.
결국 유다는 멸망한다.
바벨론은 예루살렘,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모든 값진 것을 부숴 버렸다. (대하36:19)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내가 값지다 생각한 것을
지킬 힘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진리,
잘못된 전제들을 뒤엎어야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인간은 고난이 아니면
이 진리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게는 지킬 힘이 없다.
하나님은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분이 아니시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옳지 않다.
문화 속에 길들여져 있는 내 생각,
예를 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결과,
반권위주의, 개인의 생각와 자유, ..
섞여 있는 중에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결국 유다는 멸망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과
버려지고 더렵혀진 땅은 다시 회복된다.
70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은 이미 멸망하기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시다.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문제가 있다.
내 주변에도, 답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결코 이루어지지 앟을 것 같은 회복이
고레스를 통해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내 문제의 답은 내게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의 하늘을 올려다 보자.
2018년의 마지막 밤,
그리고 새로운 해가 이렇게 시작되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