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n Photo | 해지는 노을, 구원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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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노을, 구원의 그림

과연 멈춰설 수 있을 것인가?
오랫동안 해오던 과업이 있다.
어느날 선지자라 불리던 이가
이름을 부르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때
과연 내가 해오던 일을 버려둘 수 있을까?
 
제자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을, 그물을.. (막1:18,20)
 
세상에서의 사업으로치면
이상주의자나 현실도피자가 될 수 있겠지만
믿음으로 치자면
위대한 도전이고 부르심에 대한 응답 내지 반응이다.
 
믿음의 조상이
익숙했던 친척아비집을 떠나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 앞에 반응했다.
 
사람들은 내가 걸어갈 길을
명확하게 알고 걷기를 원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강의 그림은
그려져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그림을 다 보여주신후에 걷게 한다면
나는 과연 걸음을 뗄수는 있을까?
그렇다면 내게 믿음이 필요할까?
 
제자들을 부르셨을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막1:17)
이 말은 성취되지만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 그림의 형과 색은
예수님과의 구체적인 사귐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알 때
빈 곳을 채울 수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을때
그들은 전에 알지 못했던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해지는 노을,
아마도 모든 것이 황금빛으로 물들었을 시간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가 예수께 나아온다. (막1:32)
구원.
말로는 알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했던 구원을 목도하게 된다.
이 놀라운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외친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이 만나오던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막1:22)
 
이 사람은 누구인가?
성경은 이 사람의 정체를
대적자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압니다” (막1:24)
 
사단마귀, 우리의 대적자도
아는 예수님의 이름, 그 분의 권위.
오늘 내가 구해야 할 이름.
그분과의 사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