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두려움까지도 경험하게 되면
믿음으로 이겨내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세상의 수많은 감정을 경험하겠지만
주님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어느 외국의 낯선 방에서
밤중에 홀로 깨어 심한 두려움에 휩싸였을때가 있다.
진정이 되지 않는 두려움을 경험하고서야
많은 감정을 경험한다는 기도 자체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인생의 무게는 결코 가볍거나
우습게 볼 성질이 아니었다.
감정이 견디기 힘들만큼의 무게라면
지옥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신체의 일부를 빼버리거나 잘라버리더라도
결단코 피해야 할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는 끊없이 용서하라는 예수님이지만
죄에 대해서는 타오르는 불처럼 단호하시다.
죄에 대한 단호함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의 맥락으로 살펴야 할것 같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가 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금하였습니다.” (막9:38)
요한은 제라라고 하는 소수에 의해서,
또는 주님을 따르는 방법이나 방식을
제한하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예수님은 “금하지 말라”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 하나도 실족하게
하지 말 것을,
물 한 잔이라도 줄 것을 명하신다. (막9:41-42)
하나님 나라안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머리로 둔 몸과 같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주님은 소자를 말씀하시며
과부와 고아를 말씀하신다.
나는 무엇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고민이 된다.
모든 것을 할 수 없어서 그 중 서넛을 다시 거절하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