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
책이 나왔다. 제목은 내용을 잘 담았지만
책이 나올때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
‘결혼을 배우다’ 라는 책이
내가 결혼에 대한 전문가인것처럼
생각하지는 않을까?
‘육아를 배우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에 담은 내용은
성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답은
주님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기계적인 답을 쫓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을 앞에 두고 죽음에 이르거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 주님앞에 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
예수님이 가진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 말씀하셨다.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막10:17-22)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킨 청년의
믿음과 의지는 대단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명령 앞에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영역, 배후의 권세들이다.
가진 것이 많아서 무엇이든 원하는데로
움직일 수 있는 권세가 있다.
그 권세를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은 두려움이다.
불확실성과의 싸움,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다.
밑바닥 인생은 잃을 게 없다던
노숙자 출신 두한이의 말이 생각난다.
내게 잃을 게 많다면, 주님의 명령 앞에 주저할 게 많다면
이미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 영원한 생명은 주님께 내 권위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야 말 그대로 주님이 주님 되신다.
부자 청년뿐 아니라 나도 많은 상상앞에 주저하게 된다.
이 마음을 올려드리며 기도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10:27)
내가 답을 내려 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을 아시는 분께 나아가는 것,
주님께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