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완전하지 않다.
당장 내가 나를 보아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이다.
한숨만 나오는 자신을 보며 말한다.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 고백은 믿음의 선언이라기 보다는
내가 살기 위한 고백이다.
주님 안에 나를 리셋할 수 있다는 것,
주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왕이 입성하신다.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는 나귀 새끼(막11:2)
이 날을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짐승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왕이 입성하신다.
사람들은 외친다.
자신의 겉옷을, 누군가는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그렇게 왕을 환호한다.
종교지도자들과 정치가들은
이 소란에 긴장과 경계심을 가졌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백성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환영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막11:9-10)
그들은 알지 못한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왕은
유월절에 바쳐질 어린양이라는 것을.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자신이 죽음으로 백성을 살리실 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외침이지만
그들의 외침에도 복음이 실려있다.
호산나 :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님, 오늘도 나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