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본질이 아닌
목적의 도구로 사용하는 느낌은 마음을 슬프게 한다.
이런 저런 많아질수록 마음만 복잡해질 것 같았다.
차라리 생각과 계산을 하지 않고, 내 앞에 당면한
상황속에 주님의 뜻을 묻고 한걸음만 나가기로 했다.
비록 계산이 눈에 보여도, 계산을 다 판단하게 되면
나도 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힘이 있으며, 날선 어떤 칼보다 더 예리하다.
말씀은 내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낸다.
완전히 해체되었을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숨을 수 없어
발가벗은 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히4:13)
말씀앞에 나의 실체가 드러나면
나는 그저 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나를 동정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면
나는 날마다 긍흉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히4:16)
누군가의 격려나 위로가 아니라
성경의 약속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께 나아가면
지금의 때에도 돕는 은혜를 얻게 되고
무엇보다 주님의 긍휼을 힘입게 된다.
동시에 예수님께 나아가게 되면
양날의 날카로운 검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예리함이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디매오가 소리치고, 한 번 더 소리쳤던
예수그리스도에 생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