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후배가 내 행동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몇 분의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누군가에게 향했다고 한다.
한참을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몇 분의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누군가에게 향했다고 한다.
한참을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몇 년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분이라 반가워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인사드리려는 찰나에 그 분이 어색해하진 않을까 해서 그냥 돌아왔어.”
사람들은 들인 노력이 있으면 결과를 원한다.
나는 들인 노력이 있어서 생각이 바뀌면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는 편이다.
단적으로 기질이 드러난 에피소드였다.
미술을 시작하고, 전시를 열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내 생각에 간섭해주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감동 때문에 박사과정을 공부했고 수료까지 했지만
논문을 쓰기에는 또 다른 시작점이 필요하다.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기에 무엇 하나 쉽지 않다.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지만, 나는 누군가를, 그리고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꿈꾸는 것은 말씀에 대한 기반,
곧 주님의 약속이 전제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여러 가지는 하나님이 특별히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주님이 이끄시는 곳까지 걸어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주저주저하며 주님의 이끄심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은 내 안에 당신이 거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8:10)
내 생각에, 내 마음에 주님의 법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내 일상에 주님이 간섭한다는 것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8:10)
내 생각에, 내 마음에 주님의 법을 가르치신다는 것은
내 일상에 주님이 간섭한다는 것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주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자이지만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단번에 나를 구속하신 후,
이제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전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히8:12)
돌아보지 않아도 될 것은, 주님의 성품과 약속 때문이다.
여전히 주저주저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면
두려움을 뛰어 넘어 이끄시는데로..
두렵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으로 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넘지 않았다.
가나안 족속은 그들 가운데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었다.
경제적인 이익이 하나님의 말씀에 앞섰다.
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다” (히8:10b-11b)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다” (히8:10b-11b)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2:19-20)
아멘, 주님 나를 만나주시고, 내게 찾아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