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당했을때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을까?
기쁘게 여기는 것은 믿음과 소망 때문이다.
마치 감사할 수 없을때 감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험을 당했을 때 ,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
인내는 온전하고 성숙하게 나를 만든다. (약1:2-4)
그 시간을 위해서 이십대 초반을 기도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은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해서 얻은 감정과 경험이라고
가짜 감정과 가짜 경험이 아니었기에
그 시절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시간은 너무나 감사한 시간임을 알고 있지만
높고 높은 파도가 다가올 때 나는 날마다 두려워
더이상 이렇게 기도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을 만날때
나는 물에 잠기어
십자가 아래 그저 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지를 따져 묻는 대신
우는 시간을 통해,
말그대로 울음 그자체를 통해 주님이 하실 일이 있다.
굳어지고 딱딱해져 경화된 내 마음을
주님은 시련과 환난과 울음을 통해 부드럽게 하신다.
참아내고, 아파하는 시간을 통해
주님은 나의 구원을 견인해 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보내며 나는 지혜를 구하게 되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주님의 의도와 계획을 보게 되면
나는 생각보다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알게 된다.
이 상황에서도 주님의 주권이 상황을 압도하고 있음을.
그래서 지혜를 구하고 또 구한다.
아내와 아이들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마음의 방향, 신앙과 믿음에 대한 마음
마음을 기른다는 것, 마음이 길러진다는 것,
사람들은 눈에 드러난 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그 이면에 마음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지혜다.
지혜는 얼마나 똑똑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과 어려움과 기회 앞에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다윗이 사울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블량배들과 굴안에서
반응한 것처럼,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앞에서, 감옥에서, 기근에서
반응 한 것처럼, 모세가, 다니엘이, 여러 상황 앞에 반응한 것처럼
오늘 내가 선 곳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약속 위에 선다는 것을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확실한 약속이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구하면 주시리라. 확실한 약속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