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모임을 마치고, 서둘러 사진과외 시간을 맞췄다.
바쁘지만 매일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
아픈 이들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일 몇 번의 미팅과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막막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은 감사하다.
늦은 시간, 잠든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강의때문에 만났던 유명한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를 생각한다.
불만과 아픔을 들었을때
그 이상의 시간을 해독하는데 시간을 사용한단다.
내가 듣는 것들, 경험하는 아픔들을
나는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해독해야 한다.
봄이 반갑다.
우리집이 유난히 춥기 때문이다.
집근처 화훼집에 들러 아내가 식물들을 몇 가지 샀다.
몇 만원 되지 않지만, 아내가 괜한 돈을 쓴건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봄을 알리는 신고식같은거다.
월동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관건인데
문제는 식물이 월동하는데는 식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화분에 심느냐 땅에 심느냐의 차이가 크다.
땅에 심지 못해서 블루베리 외에는 5년간 실패를 거듭했다.
의지와 맹세와 다짐만으로 되지 않는다.
월동하는 식물을 키운다고 해도 화분에 심으면 버티지 못한다.
주님안에 살아야 월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함께 몸을 이루어야 월동이 가능하다.
1차 전도여행에서 중도에 포기한 마가를
바울이 언급한다. (골4:10)
마가 때문에 가까운 동역자 바나바와 다투기까지 했다.
믿는 이들과도 다툼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주님은 일하신다.
문제는 영원하지 않다. 영원한 것은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