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에 집에 돌아왔다.
버스안에서 가족들과 화상채팅을 해서
그나마 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얼굴을 볼 수 있어서
형편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온유가 태어나고 아직 백 일이 되지 않았을때
아프리카에 한 달간 머물때는 도무지 안부를 알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선교사님댁에서
국제전화로 잠깐 안부를 전하는 게 고작이었다.
네팔에서 강진이 있었을때는 그나마 굿네이버스측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조기귀국할거라는 이야기도 전했는데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조기귀국하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 조기귀국했지만 나는 그것에 남았다.
일정을 다 보낸후에 아내를 만났을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서로가 서로를 알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아내는 내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두려움이 아닌 지독한 그리움일거라 표현했다.
천국을 생각한다.
두려움 가득한 내게 주님은 나를 택하시고
내 안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물들지 않으려 하고
주님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네가 잘 보았도다” (렘1:11-12)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사람들을 보고, 오늘 여러 젊은 부부들과 신앙의 선배를 보았습니다.
오가는 길, 취해 있는 사람과 빈 마음을 채우려 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보게 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님이 보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 물으면, 말씀해주신다.
주님은 두려워 할 대상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움은 두려움보다 큰 것으로만 밀어낼 수 있다.
어떤 경우에건 두려움보다 큰 이는 주님이시다.
주님을 두려워 함으로, 모든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제사장들과 그 땅의 백성들과 맞서서 싸우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내 동료, 내 친구들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이기고 지는 결과를 떠나 피하고 싶은 일이다.
게다가 전해야 하는 메세지는 조국의 멸망, 하나님의 심판이다.
받기 힘든 메세지를 듣고 그들은 예레미야를 치겠지만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렘1:18)
한 사람을 택하시고, 뜻하신 일을 해나가시는 주님 앞에서..
심판을 주도해 나가시는 주님 앞에서.
하나님은 유다의 심판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며
그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경배했으니
그들의 모든 죄악에 대해 내가 내 심판을
그들에게 선포할 것이다.” (렘1:16)
결국 그들의 왕, 그들의 남편을 떠나
영적 행음한 일에 대한 심판이다.
내 방식대로의 하나님이 아니라
주님이 자신을 계시한대로, 주님의 성품을 따라
내가 아닌 주님이 왕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