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주의자를 비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도구화시킨 것에 대한 비판이다.
나는 차라리 지독한 기복주의자여야 한다.
나의 생명이 주님께 비롯되었다고
더욱 철저하게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두려울 때가 있다.
세상은 믿음만으로 쉽게
구별되거나 살아지는 것이 아니란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신론자로써 세상을 바라보지만
그것으로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
두려움. 과연 누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가?
막강한 군사력을 가졌거나
담대한 마음을 가져도
그것은 주님앞에 상대적일 뿐이다.
풀이 없으면
들의 암사슴도 새끼를 낳아 내버리고
모두가 부끄러워 자신의 머리를 가린다. (렘14:3-5)
네팔에 강진이 있었을때
먼지 투성이의 난리통에 물 한 모금으로도
피로와 갈증이 해갈되지 않았다.
전해질 가루를 의료진으로부터 구해서
한숨을 살았던 기억이 있다.
물리적인 갈증은 이렇게 해결한다지만
영적 갈증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주님. 주님.
주님을 찾기에 쉽지 않은 이유들, 관심들.
더욱 단순하고 애타게 주님의 이름을 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