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아픔과 갈등을 이야기한 지인의 고백을 들으며,
여러 간증앞에서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지
의문할때가 있다는 이야기앞에서 나는 함께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감사, 그 앞에서 기도하다가
주님이 내게 말씀하심을 느낀다.
간절함과 조급함은 표현의 차이에서 나뉜다.
영혼에 대한 간절함때문에 기도하지만
하나님보다 앞서 일할때 우리는 시간을 그르치거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주님은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말씀하신다.
여리고성을 앞두고, 가나안과의 성전을 앞두고
여호수아는 비슷한 심정을 가졌다.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전쟁,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 서야할 것인가? 과연 이 압도하는 적들앞에
내 결심은 얼마나 단호하며, 전투력은? 전력은?
그런데 간절함과 조급함의 기로에 있는
여호수아 앞에 한 사람이 섰다.
“너는 나의 편이냐? 적의 편이냐?”
여호수아에게는 피아의 구분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대신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곳에 왔노라 말한다.
그 앞에서 신을 벗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의
부담감도 내려놓고, 지휘권을 그에게 양도한다.
인생을 향한 나의 간절함, 사람을 향한 조급함
불안함, 불완전함 이 모든 것앞에 주님은
내 앞에 서셔서 질문하신다.
“이 전쟁은 누구의 것인지?”
지인에게 이야기하려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말해주는게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을 취했다.
후배와 프로젝트 하나를 두고 의논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현실속에 풀어낼 수는 있지만
지금이 그때인지, 지금 해야 할 일인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시간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라
일을 서두르지 않는 편이다.
일을 시작한 후 행동하게 되면
방향을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각자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와 대상이 다르다.
때로는 이런 생각 때문에, 때로는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는 것을 더 고민하게 된다.
일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주님앞에 순종해야 할 연약함일지도 모른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한 짓으로 인해서
내가 그들을 세상 모든 나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 것이다.” (렘15:4)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 나라의 왕이 그 나라를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이 고통하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시다.
나를 사랑하신것부터. 그리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과 과정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
그리고 죄에 대한 심판도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오래 참으셨고, 도가 지나칠만큼 기다려 주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용서를 구해야 할때,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야 할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