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신앙과 같은 신념이나 가치 외에
몇 가지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조명, 소리, 그리고 작업 시스템들이다.
빛과 소리는 취향의 문제이긴 한데
피로함과 아늑함을 느끼는 부분이다.
예민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혼자 말하지 않고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는게 함정이다.
언젠가 땡볕에서 쓰레기마을 사람들을 줄지어 가족사진찍어줄때
40도의 뜨거운 날씨에 몸이 녹는줄 알았다.
그런데 함께 했던 이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진지하고 신나하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한다.
내가 내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으니
그런가 보다 듣고 있었는데,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간혹 노는것과 일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을 일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면
능률이 오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일하는 것을 노는것처럼 하기 위한 장치가
소리나 빛에 관한 것들이다.
작업시스템은
작업을 하려할때, 마음의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데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먹통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에
예민이라기 보다는 생존의 문제와도 같다.
며칠간 그 시스템이 자주 먹통이 되어서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시스템을 정비했다.
반 년전에도 ‘이 마우스 이상한데?’ 라고 했는데
역시나 마우스를 잡자마자 ‘이상한데?’ 라고 말한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바꿀 때는 되었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작동이 되고 있는데다가,
바꾸게 되면 내 마음도 기분좋게 바뀔것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행복을 유보하고 있는 중이다.
험난하고, 힘든 작업을 앞두고
마음에 다짐을 하듯,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유치한 각오들이지만, 이런 소소함들을 생각하고
혼자 웃고 만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앞세우고
나머지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잠언을 보면, 그 나머지의 일상의 것에 대한 감사를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가치를 좇느라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잃어서도 안되지만
정말 중요한 가치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평범한 일상을 놓치면 이원론자, 근본주의자, 이상주의자가 되런지도,
누군가의 마음을 함께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지 사역자와 결혼하는 이야기에 대한
매우 상반된 의견들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그 분의 백성이라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기득권안에
머물러 살아가고 있구나.
하지만 이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주님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기경하실거라 믿는다.
밤에 잠들기 전에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했다.
철, 곧 북방의 철 또는 청동을
깨뜨릴 사람이 있겠는가? (렘15:12)
바벨론의 군대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군사력앞에 주변 땅은 초토화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돌아오면’ (렘15:19)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지킬 것을 약속하신다.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견고한 놋 성벽이 되어.
꿈속에 쓸데없는 재료실험을 상상했다.
철병거와 놋성벽.
청동기시대가 있고, 철기시대로 발전하기에
당연히 철이 강하지 않을까?
철과 놋과 어떤 재료와 어떤 병거가
더 견고하고 강한 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만일 돌아오면, 그래서 주님의 백성이 되면
주님은 왕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