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은 다르다.
예정이라 말할 수 있는 운명과
인간의 선택을 기반에 둔 자유의지와의 셈법과 같다.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이야기하시던 하나님은
갑자기 북쪽 땅과 쫓겨났던 이들의 회복을 말씀하신다. (렘16:14-16)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을 제한하는가?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선택하게끔 내버려둔다.
그래서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공간이
사람의 마음이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강제해서 만들어낸 사랑의 감정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스스로 돌아오기를,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아신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상인들에게 팔렸을때도
보디발의 유혹과 감옥에서의 시간도
하나님은 아신다.
다윗의 마음과 범죄까지도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것은 자신의 죄악이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운 재판이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케 할
계획까지도 품으신다.
이 모든 시간을 통해여 열방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렘16:21)
안다라는 표현은 지적인 동의를 넘어서는 말이다.
그들은 경험하여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만든 신은, 신이라는 것을(렘16:20)
하나님의 눈이 모든 행동을 보고 있다.
그 앞에 누구도 숨지 못하고
죄 또한 주님의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한다. (렘16:17)
주님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기에
누구도 자신을 의롭다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피로 옷입고
주님의 보좌앞에 나아가야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