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길,
그래서 카페에서 이런 저런 말들을 두서없이 말했다.
일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를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일이 되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간속에
우리는 끊임없는 판단속에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전제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있는 곳에 주님을 인정한다는 것.
믿음은 무엇인가?
믿음은 고백하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믿음은 살고, 살아가는 시간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다.
기도하는 동료들이 있다.
주님은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요원해 보여서
믿음은 절망하며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절망. 절망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민낯을 보이신다.
각오나 결심 따위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 없이 세상에 성공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때로는 쉽다.
성공 그 하나만을 바라보면 양심이고 규칙 따위는 지워버리면 될 일이다.
내게 수없는 제의가 있었다. 제의를 거절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나는 거절하는가? 믿음때문에 거절하게 된다.
거절한다고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게 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사람들은 되는냐를 통해 믿음과 신앙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엄히 말한다.
“사람을 의지하고 육체를 그의 힘으로 삼는,
그래서 그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렘17:5)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펴보며
생각을 시험해 각 사람을 그의 행동에 따라,
그의 행위의 열매에 따라 보상한다.” (렘17:10)
사람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결과를 보고
판단하고 인정하기에
그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여전히 왕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를 말씀하신다.
극단적으로 이 땅에서의 실패를 감수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물으신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연결점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이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렘17:7)
도대체 무슨 복을 말하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잘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된다.
하지만 더 잘되어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절망이다.
인간은 절망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내게 예수님은 빛으로 찾아오셨다.
인간의 종말, 어둠, 절망을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시다.
내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