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국의 현지 선교사와 보낸 오전 시간, 많은 생각을 갖게 된다.
현재 선교회의 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보수나 지위가 아니라
그에게 상처준 사람과의 만남을 유일한 조건으로 제의했다고 한다.
한국인 선교사로 부터 받은 여러 상처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들을 용서하고 품어 주는 일은
복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이다.
유망한 IT계열의 대학과 직장에서 20만원의 사례비로
살아가는 선교사와, 이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보석을 발견하고
청혼한 선교사.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기도하며.
선교를 하고,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사역을 하며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아이러니.
수없이 많은 상처를 교회와 사역자에게 받았다.
차라리 세상에서는 일처리가 보다 심플한 편이다.
하지만 교회안에서는 서로를 향해 더욱
계산적이고 지위와 상황을 이용하려 드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교회와 거리를 두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쌓아가던 어느 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셨다.
결국 주님과의 관계, 사랑은 불완전한 교회로 이어진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모든 문에 서서
안식일에 대한 심판을 전한다.(렘17:19)
안식은 주님의 창조원리속에서의 쉼을 말한다.
쉼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안에서의 안식.
곧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안식에 대한 말씀이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라면
신약에 와서 수없는 논쟁은 무엇을 말하는가?
율법적 안식을 엄격하게 지키던 이스라엘에게 말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눅6:5)
하지만 동시에 안식, 그 자체는 너무나 중요하다.
워커홀릭으로 쉼을 알지 못했던 시간속에
하나님은 내게 안식을 말씀하셨다.
힘의 논리와 갈수록 빨라지는 시간속에 살아가고 있다.
예배와 작업 공간이 필요하고, 새로운 시작을 고민하고 있으며
여러 마음이 앞서지만,
나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절을 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방향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서이기도 하고
주님 앞에 앞서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지키기 힘든 이유는
손안에 있는 세계를 통해, 끊임없이 주변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비교를 멈추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