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이의 생일,
잠든 소명이를 위해
벽에는 해피버스데이 글자를 달고
작은 선물을 포장하고
아내, 온유와 축하 메세지를 몰래 녹음했다가
주일예배 가는 차안에서 들려주었다.
유쾌한 웃음.
매일 같은 날이지만
기념한다는 것은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나의 매일을 구분하는 기준,
새 날을 창조하시는 주님에 대한 신뢰.
몇 가지 제의를 받았다.
어느 것도 나를 해치거나 침범하지 않는
배려들 속에서
하나님의 웃음 같았다.
위협과 두려움은
실제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이 감정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재료가 될 것이다.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두렵다.
왜냐하면 약속만 있을 뿐 내 손에 실제적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허망한 꿈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 더 분명한 약속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시드 문 입구에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내건 계약조건은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바쳐서
자신의 소원을 이룬다는 선명한 계약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자녀를 불가운데 내던질 수 있다.
신자본주의시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맘몬을 위해
부모는 여전히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찾는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공증도 받을 수 없는 허망한 것이다.
도리어 주님의 분노를 일으킨 절망의 수고였다.
예레미야는 골짜기에서 토기장이가 만든 옹이를 깨뜨렸다.
그곳에서 백성들은 아들의 살을, 딸의 살을 서로의 살을
뜯어 먹게 될 것이다. (렘19)
미디어에서 말하는 수많은 아픔들, 잔혹한 뉴스는
서로의 살을 뜯어 먹는 아픔의 이유는
인간의 욕망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교회, 우리의 기준점은 무엇인가?
말씀을 가르쳐 주세요.
말씀이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내게 어떤 큰 기쁨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주님으로 부족한,
주님이 계시지만 여전히 목마른,
혹은 목마르지 않는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