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수박을 먹다가 질문했습니다.
“아빠, 이런 수박씨도 심으면 자랄까?”
“응. 심으면 싹이 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겠네.”
“그러면 이거 옥상에 심어도 되요?”
“응, 대신 한 사람에 씨앗 하나씩만 심어야 해.”
아이들은 와. 환호성을 지르며
작은 씨앗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정말 싹이 난 것을 보고
가족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싹이 날수가 있지?’
당연한 것 같은데도 신비로웠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는
화단이 수박 넝쿨로 가득하게 되었고
또 시간이 지나 이 아이들은 열매 맺기 시작했습니다.
열매 하나는 화단 뒤에서 남몰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온 가족이 화단에 들러붙어서 밀고 당기면서
구석에서 짱구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 수박 구출작전을 펼쳤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내와 아이들은
말씀을 꾸준히 암송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어릴 적인 몇 년 전,
일주일에 성경 한 장씩을 암송했습니다.
한 주가 지나면 또다시 성경 한 장을,
다음 주가 되면 또다시 성경 한 장을,
엄마가 앞서가면, 아이들이 졸졸 따라오는
그 장면이 놀라워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올해부터 아이들이 각각 피아노와 태권도장을 다닙니다.
남들 다 다닌다는 학원을
10살 넘어 다니기 시작하니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하루 시간은 바빠졌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의 템포를 맞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요즘 새로운 말씀들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암송하는 가족을 보며
주님께 이 시간의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암송한다고
신앙이 더 좋은 아이를 담보하지 않습니다.
멀리 찾을 필요 없이 우리 자신이 그 증거입니다.
말씀 하나 암송해도 선한 것 하나 없는 우리 존재입니다.
다만 세상의 가치관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세대 속에서 부딪힐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자신이 믿는 것과 부딪히는 가치들을 질문합니다.
과연 말씀을 암송한다고 얼마나 기억할까요?
영원히 기억할까요?
곧 잊어버리고 말 말씀인데 소모적인 시간이지 않을까요?
그제 소명이가 말씀을 암송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전에 암송했던 말씀인데
다시 만나서 너무 좋다.”
온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에 하트를,
또는 이모티콘 모양의 표식으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잊을 말씀이라, 말씀을 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오늘이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아내와 함께 아이를 품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아이로
양육하길 말씀하셨습니다.
가성비 있는 아이로 기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저 살아가는 아이를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가 어디 있나요?
누구나 살아가는데,.
그럼에도 살아가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답은 알 수 없지만
답을 찾기 위해
아내는 아이들과 말씀으로 만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줄 수 있을 때 안아주는 것,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그것을 순종하는 것,
다시 말해 사랑하는 것으로,
‘이 작은 수박 씨앗이
과연 싹을 띄울까? 열매 맺을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모양이 아닐 수 있지만
그 보이지 않는 시간속에 주님이 일하십니다.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겨자씨가
자란 후 큰 나무가 되어 그들의 가지에
쉼이 필요한 새들이 깃드는 풍경이라 믿습니다.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의 한 단면으로 판단하지 않고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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