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까지 두한이에게 무표정한 등을 보였다.
바보 같지만, 두한이한테 삐쳐 있었다.
사무실에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했는데
밥에 참기름, 고추장, 참치, 계란 등을 버무려
보기만 해도 먹음직한 비빔밥을 만들었다.
맛나게 먹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두한이는 늘 이때가 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내가 먼저 그릇 등을 모아서 세면대로 옮기며
“두한아 나머지도 모아서 가지고 와라.”
둘이 나누어 설거지를 할 생각이었다.
두한이가 조금 있다가 그릇을 모아들고 와서는
내 옆에다 턱 놓고는 나가버린다.
“야! 김두한”
히히덕 웃으며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수세미를 하나 들고 와 내 옆에 두고 가버린다.
“두한아. 형이 일단 씻고 가져갈게. 나머지는..”
“아. 아..으윽. 형. 잠시만. 잠시만..”
두한이는 특유의 급한 용무 제스처로
화장실 안에 쏙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린다.
김두한. 차암 얄밉다..
동석이가 와서는 화장실문을 몇 번 두들기다가
불을 꺼버리고 나가버렸다.
잠시 후 두한이가 나왔다.
“불 누가 껐어요?”
“동석이가..”
두한이는 사무실로 가려다 재빨리 돌아와서는 불을 켠다.
동석 이한테 야단맞을 까봐 돌아온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두한이는
벽에 기대어 내가 설거지 하는 걸 구경하고 있다.
거울로 비친 그 모습이 너무 얄밉다.
쫒아 내지 않으면 설거지 하는 내내 저러고 있을 거 같아서
설거지 물을 뿌려 버렸다.
도망가는 두한이.
우현 형이 집에 가신단다.
설거지 하다 말고 인사하러 나가니
우현형 옆에 두한이 녀석이 딱 붙어서는
“요뗍이 형이 물 뿌려서 옷을 다 버렸어요.”
김두한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얄미울까..
평소 같으면 장난으로 때리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화내는 것 마저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유치한 생각이지만
저런 놈을 뭐가 예쁘다고 생일날 비싼 음식 사 먹이고
어제는 케잌을 사먹였을까 싶었다.
생활비로 쓰면 며칠은 귀하게 썼을 텐데
불 한번 붙이고 말 비싼 케잌이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드는 자신이 유치해서 화가 났다.
“형 내일 봬요.”
“몰라~ 보기 싫다.”
사무실에 돌아왔다.
잠시후 집(잠실)으로 간다던 두한이도 사무실로 돌아왔다.
또 인터넷 하러 온 모양이다.
오후에도 점심 약속이 있어 사무실을 걸어 나왔는데
두한이가 멀리서 급하게 부른다.
“왜?”
“형~ 빨리 이리로 와봐요.”
“왜?”
“급한 일이예요. 빨리요.”
“안 급한 일이면 어쩔래?”
“아이참. 정말 급해요. 빨리요. 빨리요.”
두한이를 향해 달려갔더니 사무실로 들어오란다.
“두한아 왜?”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할 정도로 웃더니
“컴퓨터 쓴다구요. 히히^^”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두한이가 다시 돌아 온 이유는
“형. 담에는 저두 설거지 할게요. 히히”
내게 이 말을 하려고 돌아온 것 같다.
얄미운 두한이에게 단단히 삐친 나는 끝내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한 채 집으로 왔다.
나도 두한이처럼 단번에 표정을 바꿔서 ‘또 그러면 국물도 없어!’
호통치고는 웃어 주고 마는 건데.
내가 속상한 만큼 너도 내 뒷모습 보며 실컷 미안해해라. 는 속셈인거다.
나도 참 못됐다.
두한아 한 번 웃어주지 못하고 헤어진 게 이렇게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