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웠다.
두려움 정도는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사람은 휘청일 수 있다.
인생이 두려운 것도, 삶의 파고가 두려운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유치한 밤이지만
새벽에 빨리 해가 떠오기를 바랄 정도로 두려웠다.
밤에 몸살 때문에 심신이 약한 상태라 진땀을 흘리며 누웠다.
다음 날, 청소년 수련회를 섬기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도 한몫 한 것 같다.
아내는 아이들과 1박으로 영성수련회를 떠났는데
오랜만에 텅 빈 집에 누워 잠을 자다가
몇 번을 가위에 눌렸다,
꿈속에 악귀에 눌린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그 악귀가 나를 덮쳤고, 나는 기도하고 선포하다가
내 목소리에 놀라서 잠을 깼다.
밤에 잠들기 무서워
동이 트고 새벽에 잠이 들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청년과 상담하다가 들은 적이 많다.
그런데 다시 잠이 들기 힘들 만큼 두려울 때
청년들의 아픔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 감사했다.
두려움.
감정은 의지로 이겨낼 성질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하고,
당신의 긍휼하심을, 은혜를 구하며
다시 자리에 누운 것 같다.
결핍이 없는 사랑은, 도리어 사랑을 떠나게 만든다.
내가 가진 결핍은 하늘을 바라보는 근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법과 절기를 이야기하신 후,
등잔불과 진설병을 말씀하신다.
순금 1달란트를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브살렐이 공교하게 만든
일곱 등잔의 메노라.
매일 불을 꺼뜨리지 않는 수고,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 (레24:1)
이 불은 가장 순전한 올리브유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올리브 열매를 부순 후에,
각각의 무게추를 사용해서
기름을 짜게 되는데 가장 가벼운 돌을
사용해서 짜낸 기름으로 등잔의 불을 밝히거나
왕과 대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리스도, 메시아라는 말 자체가 이런 기름붓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다시 짜고, 또 짜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기름까지도
무거운 추를 사용해서 짜낸다.
겟세마네 라는 지명은 올리브와 틀의 복합단어이다.
겟세마네에서 드린 기도는 인류의 죄악을 두고
마치 마지막 기름까지 짜내는 기도와 같다.
누가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는 표현은 이런 기름을 짜내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기도와 같다.
매주일 진설하는 빵은 개 당 부피가
약 4.4리터의 커다란 빵이었다.
이런 12개의 빵 12 개를 매 주 진설되어야 했고
한 주마다 묵은 빵을 먹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매일 밝혀야 하는 불
매주일마다 진설해야 하는 언약의 빵(레24:1-9)
제사와는 상관없지만
매일, 매주 드려야 하는 이유는? 얼마나 고된 일인가?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라 말한다. (레24:8)
하나님을 믿는 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위한 일인가?
이사야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내가 거할 성전을 네게 지을 수 있겠느냐?”
과연 나는 이 질문 앞에 무엇을 답할 수 있을까?
빛, 지금 시대에 과학으로 접근하기 좋아하지만
물질세계에 속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중첩된 세계의 신비로움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본체 하나님이시지만 이 땅에 빛으로 오셔서
당신의 몸을 나누시고
너희를 위해 나를 내어준다 말씀하신다.
매일의 두려움과 실수까지도 당신의 빛 가운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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