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것도 철저하게 감정의 동물이라
옳은 것을 따라 살아간다고 믿지만
사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감정에
우리 인생이 휘청거릴 때가 많다.
언젠가 낙심해 있을 때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기뻐하고 기뻐하렴,
나로 인하여 기뻐하렴.”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할 수 있는 근거는
주님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내 감정과 반한 태도는
기계적인 것 같지만
인격적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말씀하신 분이 책임 지시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순교한 영혼들이 피값을
신원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순교자의 피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고 말씀하신다. (계6:10-11)
주님의 심판, 마지막 때는
순교자의 피가 차는 시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시간이다.
결국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댓가와 같다.
나는 과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부끄러울 때가 많다.
가까운 이들이 선교사로 떠나고 있다.
현희 집사님이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았고
어제는 중동으로 떠날 소담 선교사님을 몇 년 만에 만났다.
탈북자 대안학교에서 명숙 누나를 만났고..
그들의 삶과 대화 속에,
살아계신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된다.
심판은 권력자들뿐 아니라
자유인과 모든 노예에게까지 임한다. (계6:15)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지만
동시에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도대체 내 안에 선한 것은 무엇인가?
오직 어린 양을 따를 때 흰 두루마기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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