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지만
이 말은 바로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의 차이는
느낄 수 있는 관용의 폭을 넘어선다.
하나님이 자신을, 아들을 내어주시고
원수 된 죄인을 살리셨다는 것은
이미 이해의 폭을 넘어선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일반적이지 않다.
더 사랑하시는 사람도 있고
지목하여, 특별한 뜻을 품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편에서는
과연 부러워할 만한 모양인가?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고
해나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계7:15-16)
흰 옷입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은혜받은 사람이고
특별 대우를 받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람들.
하지만 ‘다시는’ 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 굶주렸으며, 목말랐으며
해나 뜨거운 기운에 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물었다.
“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어진 자들이다.”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시길 원하고
특별한 은혜 가운데 거하길 원하신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와 더불어 잔치할 거라 약속하셨다.
그 사랑을 입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의 편애라기보다는
주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자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거하실 것입니다. (계7:15)
거하다는 말은 장막을 치다, 살다는 의미를 가진다.
동일한 단어가 요한복음에서 사용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
그분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거하신다는헬라어 ‘스케노오’는
히브리어 ‘쉐키나’와 연결된다.
이 말은 하나님의 가시적인 임재.
주님의 보좌에 나타난 영광.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임재가
이제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로 나타난 것이다.
주님과 함께 하지만
여전히 눈물 흘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날마다 씻을 때.
어린 양은 나의 목자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아멘. (계7:17)
#생명의삶 #QT #계시록 #임마누엘
#스케노오 #쉐키나 #노래하는풍경 #천국의야생화 #럽앤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