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인내를 말씀하시고
잡혀가시던 날 밤에는
이마저도 참으라 말씀하신
예수님이 극도로 분노하셨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신 예수님.
하지만 그 분노의 지점은
사람들의 흔한 지점이 아니다.
손해 보려 하지 않고
가성비를 따지는 세상에서
분노하고 속상할 일들이 많지만
예수님은 그런 일에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하신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될 이유를 베드로에게 말씀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몫을 내게 하셨다. (마17:24-27)
그런 예수님이
오랫동안 이어져 오는
유월절의 떠들썩한 성전 한복판에서 분노하셨다.
그것은 작은 교회나, 그보다 큰 규모의 교회에서
벌이신 일이 아니라
유대교의 가장 중심이자
이스라엘의 심장에서 벌이신 분노였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을 보며 말씀이 생각났다. (요2: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주님의 성전에 대한 가치와 사모함으로
생긴 분노 장애 정도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
종교지도자 뿐 아니라 제자들도 보지 못한 성전의 참 의미..
지금은 아무것도 이해 못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이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두기로 약속한
성전이 성전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지만
여전히 성전인 것처럼 살아갈 때
나는 분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직 흠이 없는 동물만 제물로 드릴 수 있었기에
제사에 필요한 짐승과 환전상으로 가득했던
성전. 성전의 기능을 위해 필요한 요소라 하지만
참 기능을 상실했던 성전을 보고
예수님은 성전을 뒤엎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며,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짜증 내고 있는가?
예수님의 주의 전에 대한 사모하는 열심으로
자신을 삼킨 것처럼 부였다.
나는 무엇에 삼킨 것처럼 보이는가?
나의 한숨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영역,
주님의 약속과 마음,
잠들 때까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 앞에 신음하게 된다.
이 시간을 통해 주님은 당신의 구원을
견인하실 것이다.
주님의 시간 안에 나는 믿음으로 감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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